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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에서도 묵묵히 일하며...성실함으로 독일에서 새로운 삶 일군 한인 기능공 [나의 브랜드는 한국] / YTN korean

02/10/24
YTN korean

파독 기능공 유흥균 씨 이야기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제가 5살 때 6.25 사변이 났기 때문에 그거를 지금도 기억도 하고 대학에 갈 형편은 안 돼 있고 공고 고등학교에 나온 것이 희망이었고 부모님의 소원이었습니다. 마이스트로가 그렇게 지위도 좋고 보장도 좋고 또 왜 대우도 좋고 막 스물스물 올라오는 거예요.]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과거) 인천에 전도관이라 하면 제일 높은 산봉우리죠. (피란민들이) 가서 텐트 치고 조금만 오막살이 치면 이것이 자기 집입니다. 토지 개발 토지 허가 전혀 없는 데죠. 무허가로 그냥 있는 겁니다. 사실 인문계를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는 후회도 해 봅니다. 근데 되돌아보면 공고를 갔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었지 않나 그것이 참 고마운 일이죠. 공고생 우등생들 10명을 전국에서 모아서 연수 겸 공무원 겸, 완전 취업으로 이렇게 한 과정이 있었어요. (공장장님이) '내일 당장 들어오라고, 파독 너를 보내야 하는데 와 달라'고….]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컨베이어에) 컴퓨터로 돌아오면 자기 할 분이 한 부품만 거기 부착하면 돼요. 그다음에 돌아가면 그다음 부품 갖다 부착하면 됩니다. 그러면 누구나 (배우면) 하죠. 독일인하고 같이 섞여서 일하는 거기 때문에 힘들어도 어쩔 수 없고 하루에 100~140대가 나갑니다. 화장실 갈 수도 없었어요. 그 정도로 바빴습니다, 빨라요. 평균 900마르크는 우리가 (월급으로) 받았더라고요. 엄청난 돈이죠. 우리 한국에서 3만 원 받았습니다. 한 달에. 근데 이거 확인하니까 76만 몇천 원이 되더라고 그건 25~26배를 받았더라고.]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수입은) 3년에 136만 원. 근데 100만 원짜리 적금 들고 36만 원은 이제 매달 남는 거 부모님한테 형제들한테 같이 사시라고 생활비 도움으로 보내 줬고 철도청에 가면 저녁 방과 후에 사무실 청소가 있어요. 그 일주일에 50마르크 받고 보조 정비사로 들어가서 제가 부속품 닦고 부속품 조립해주고 (돈을 받았어요.) 마이스트로(명장)가 각 공장에 한 분이 있습니다. 공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 거를 제가 눈여겨보니까 너무 저의 우상화가 되더라고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마이스트로 시험) 필기, 실기, 구두 셋 중에서 하나만 낙제되더라도, 하나만 4점만 되더라도 낙제입니다. (수업 중에)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네, 뭐하고 있냐, 외국에서 온 유흥빈도 합격했는데 뭐하냐" 그때야 제가 알게 됐어요. 증명서 받기 이전에 강의에서 그래서 그때는 정말 나도 고개를 처박고 막 울었죠. 교수님이 등 두드리면서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잘했어. 잘했어.' (정비소를 차리고) 한국 사람도 독일 말이 안 통하고 영어밖에 못해, 한국분들은. 독일분들은 영어를 못해. 그러니까 보디랭귀지를 가지고 언어 소통을 하다 보니까 정말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저가 그 장소에 가서 마침 해결사를 해준 적이 여러 번 있어요.] [유흥균 / 파독 기능공 출신 마이스트로 : 한때는 행복했고 또 한때는 참 고생스러웠고 참 험난한 길이 많았었죠. 내가 여기에 온 곳은 단지 경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온 거지. 저는 당연코 (한국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은 것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한국에 돈 보낼 이유도 없죠. 또 부모님이 살아계시니까 겸사겸사 생활비도 보내고 그랬던 거죠. 그것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germany #korean #독일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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