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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 싶으면 독일인이 돼라'...독일 한인 택시운전사의 사연 [나의 브랜드는 한국] / YTN korean

30/09/24
YTN korean

파독 근로자 장기홍 씨 이야기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택시) 진상 손님 만났을 때 고약하죠. 한 4, 5년 타면 또 차를 바꿔야 하고 하니까 그런 애로사항도 좀 있고. (독일에 정착하려고) 용접 기술도 자비 들여서 배우고 요리도 한 3개월 배워서 또 식당도 하고 한번 개척해 나가는 그 정신 그거 하나뿐 정말 딴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결혼하고) 중장비 운전 배운다고 강원도로, 충청도로 (안 다닌 데가 없지.) 인하공대 금속공학과를 그것도 뭐 한 6개월만 다니다가 했으니깐 공업에 대해서 별로 아는 지식도 없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독일 보내는 그 모집 광고가 있다고 거기 친구인지 누가 가지 않을 거냐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일반 상식도 보고 기술 도면 같은 것도 볼 줄 알아야 하고 하니까 그런 시험 봤어요.]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그 엔진이 위에 컨베이어가 있어 모터 종류마다 한 5m 간격으로 떨어져서 쭉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그 나사 볼트 조이는 것도 손이 아파 갖고 일부는 장갑을 끼고 했는데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그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그러한 그 시스템이 참 아주 인상에 남았어요. 못하면은 반장한테 꾸지람을 듣습니다. 앞의 공정을 끝내야 그다음 공정을 들어가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이 몇 개인데 그 생산량을 맞추지 못하게 되죠. 그때 한국에서 내가 직장생활 할 때 제일 많이 타본 거 9,800원 집사람 갖다 준 거. (독일에서) 제가 처음에 근무해서 받은 봉급이 430마르크(당시 원화가치 약 9만 원, 직장인 평균 4배 이상)인가로 기억을 하고 있고요.]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한 20년 동안 여기서 매달 월급 보내드렸죠. 제가 직종을 5번인가 6번 바꿨어요. 돈이 될 만하다 하면 다 한 번씩 시도를 해봤습니다. 병원 남자 간호사로 한 5년 하다가 봉급을 3배 정도 더 준다고 그래서 제가 자비를 들여서 전기 용접 용접을 배웠어요. 카를스루에 또 뭐 무슨 공장 짓는다고 한 그 겨울에 100m 건축물 위에 가서 용접도 해보고 다 때려치우고 3개월 동안 요리 배워서 식당도 또 한 10여 년 하다가.]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1983년경) 병원에 간호보조사로 다니면서 그 단어 같은 거, 전문 용어 같은 거 모르면 또 간호사들한테 물어봐서 2년 동안 그 책 두 권 공부하면서 그 합격증 받아서 둘이 울었어요. 외국인들은 자영업을 허가를 안 내줬어요. 나 할 때만 해도. 이제 택시 영업을 하려고 시청에 신청하니까 너 EU 국가 국민도 아니고 난 외국인이기 때문에 '네가 국적을 바꾸면 허가증을 내주겠다.'] [장기홍 / 파독 기능공 출신 택시기사 : 71년도에 와서 23년 만인 94년도에 장인어른 팔순 잔치에 갔습니다. 그사이에 안 간 이유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죠. 고향 그리운 마음이야 뭐 이루 말할 수 없죠. (내가 보낸 돈으로) 우리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런 걸 상상하면서 좀 서러운 마음을 좀 달랜 것도 같고요. (고향 주소는) 영종면 중삼리 1247번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섬 시골이었었죠. 그때만 해도 한국 날씨가 겨울에는 굉장히 추웠어요. 천방지축으로 다니다가 빠져서 양말도 젖고 젖은 양말을 그대로 신고 학교 가서 온종일 떤 기억도 나고 (친구들이랑) 감 따 먹고 새 잡고 논두렁 얼음 길 다니다 빠져서 그냥 양말 다 접고 그런 시대가 다시 한 번 돌아오지 않을까, 뭐 이런 꿈도 꿔봅니다.] #germany #korean #독일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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